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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rd, 2008/08/14 09:49, posted by yurian
2008년 여름, 대한민국의 거리 위에서 디자인은 태양보다도 뜨겁게 작렬했다. 각목과 화염병 대신 사람들의 손에 들렸던 피켓과 깃발, 거기에 담긴 디자인은 분하고 슬프지만 활기차고 건강한 목소리를 대변했다. 칼보다 펜이 강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 우리는 이미지의 힘이 얼마나 센지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광장에서의 디자인을 거울삼아 국내 디자인계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어느 것 하나 디자인 아닌 것 없는 세상, 그러나 정작 디자이너의 정치 발언, 사회 참여 사례는 찾기 힘들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세상을 잠시 멈춰 되돌아보게 했듯이, 경주마처럼 매진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조심스럽게 언질하고 싶다. 2008년 여름, 디자인보다 뜨거워야 할 당신의 가슴을 위하여.

기획 및 진행 | 이상현 기자(shlee@jungle.co.kr)
제1회 디자인, 사회를 조준하다 (2008-08-04)
제2회 디자이너, 사회에 개입하다 (2008-08-11)



비즈니스를 떠나 사회의 일원이자 주체로서, 디자인을 통해 제 목소리를 내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자신의 신념과 노선을 지키며 사회 발언을 지속했던 국내외 디자이너의 사례를 살펴본다. 그들은 과연 디자인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취재 | 이상현 기자 (shlee@jungle.co.kr)


디자이너는 생래적으로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종속적 위치에 처한다. 클라이언트의 수주로부터 일을 얻고 부역하는 이유다. 냉정하게 말하면, 디자이너는 결국 이윤추구라는 자본의 목적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뿐인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수요를 창출하라는 지상 과제를 이루기 위해 재능을 소진해왔던 디자이너는, 제 작업물이 사회의 어디에 놓이며 어떻게 유통되는지, 그 책임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디자인은 분명 우리를 당대 소비주의 시스템으로 몰아넣는 핵심적인 작인에 불과한 것(할 포스터)”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소비 자본주의의 시녀’, ‘돈 버는 감성’ 등 디자인을 향한 비판을 인식하고, 디자이너 스스로 그 환부에 매스를 들이대는 역사적 움직임은 가장 먼저 1960년대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들로부터 시작됐다. 켄 갈런드 외 이십 여명의 디자이너가 “디자이너의 재능을 가치 있는 목적에 사용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발표한 ‘중요한 것 먼저(First Thing First)’ 선언은 세기를 넘어 2000년대, 캐나다 밴쿠버의 문화 네트워크 ‘애드버스터스(Adbusters)’에까지 이어지면서 세계 각지의 많은 디자이너들의 호응과 참여를 유도해왔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과연 상품을 잘 팔기 위해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일에 머물러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애드버스터스의 운동은 현재 소비 자본주의가 팽배한 문화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켜가고 있다.


제임스 빅토레, 토머스 매슈스, 피에르 베르나르 등 애드버스터스를 근간으로 ‘문화 훼방꾼’을 자처하며 디자인을 저항의 도구로 작동시키는 디자이너 가운데 2004년 국내 개인전시를 통해 이름을 알린, ‘영국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디자이너’라는 수식이 빛나는 조나단 반브룩(Jonathan Barnbrook)의 행보가 유독 돋보인다. 센트럴세인트마틴과 왕립예술대학원을 졸업하고 안정된 상업 디자이너의 길에 접어드는 대신, 그는 “디자인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낡은 믿음을 그간 디자인을 통해 떳떳하게 드러내왔다.

특히 광고주가 가히 신(神)인 세상에서, 코카콜라 등 글로벌 기업의 광고 제의를 단칼에 거절한 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반브룩은 사회 기반시설의 사유화, 미국의 신제국주의, 제3세계 국가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강대국들의 현지공장, 북한과 팔레스타인 문제 등 당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건드리며 여론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맨슨, 엑소셋 등 서체디자인을 통해 독특하고 세련된 감각을 자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답게 그는 기업 광고의 슬로건과 로고를 패러디‧풍자, 아이러니와 위트를 자아내고 이를 통해 해당 사안을 통렬하게 비꼬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론으로 유명하다. 그는 “정말 좋은 디자인은 단단한 신념에서 흘러나와 제품 속에, 사회 속에 녹아 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국내 디자이너의 사회적 발언 사례는 드물다. 물론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개개인의 활동이 아예 없지는 않을 터. 중요한 점은, 애드버스터스와 같은 공론의 광장과 조직적 움직임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80년대에서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민중미술운동’이 사회문제를 캔버스에 담아내며 굵은 목소리를 돋우었던 반면, 디자인계의 이렇다 할 활동을 감지하기란 어렵다.

지각 있는 디자인 이론가들에 의해 90년대 중‧후반 본격적으로 디자인 담론화가 형성되기 시작되면서, 그 반성적 목소리를 담아냈던 이래, 디자이너와 사회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물음을 제시한 사례로는 일련의 전시를 들 수 있다. 교과서와 주민등록증, 거리 상점과 선거 포스터 등 권위적이고 부조리한 것들을 현장 디자이너의 손으로 다시 디자인해 제시했던 ‘de-sign Korea : 디자인의 공공성에 대한 상상’ 전, 소비 제품, 생활용품, 가구 및 일상 생활공간, 도구들, 패션 등을 대상으로 무의식적인 행동 양식과 생활의 패턴 속에 스며들어 있는 정치의 영역을 건드렸던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 전,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으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정치적 목소리를 내면서 그에 걸맞은 디자인 형식을 적극적으로 창안하고 구성하고자 노력해온 그래픽 디자인 회사 AGI 소사이어티의 회고성 기획전시였던 ‘상상, 행동’ 展 등이 문제의식을 대두했던 것이다.

결국 단발적으로나마 지속되었던 관련 전시들은 디자인에 대한 사회의 그릇된 인식을 재고하고, 디자인계 내부의 성찰을 작게나마 도모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정치적 활동 여부를 떠나 이러한 자기 성찰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할 때 ‘과연 이것이 사회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는가’라고 한번쯤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새로운 디자이너 세대의 달라진 사회 참여가 유독 눈에 띈다. 디자인 낮잠의 문승영, AGI의 김영철과 같이 시민단체나 비영리조직과의 지속적인 연대를 통해 정치적 노선을 지켜왔던 386 디자이너 세대와 달리, 이 젊은 친구들은 이데올로기와는 거리를 두고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낸다. 변화되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위상이 빚은 결과인 것이다.

좌절금지 등 각종 금지 시리즈의 소품으로 유명한 닭똥집 디자인의 쓰바양(장윤미)은 ‘반전’ 메시지를 제품에 녹인다. 쌈지의 디자이너로 재직했던 그녀는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것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기계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거부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제품에 자신의 ‘생각’을 담게 됐다고 한다. 최근 쓰바양은 진보적 정치 포럼 ‘Marxism 2008 London’이 주최하는 'Left in Vision' 전시회에 참가, 그녀의 사회발언 메시지를 담은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는 운동권이 아니다”라고 방점을 찍는다. 명품 소비 풍토를 비꼬는 ‘Fake Bag’을 제작한 박진우, 촛불 시위에 사용하기 적합한 영구용 촛불 ‘Cup of Light’를 디자인한 Sdesignunit 역시 보다 유연하고 유쾌해진 방법을 사용한 디자이너의 사회 참여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도서 <애드버스터스, 상업주의에 갇힌 문화를 전복하라>(현실문화연구),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청어람), <상상, 행동>(AGIBOOKS),


대학 시절, 김영철은 친구들과 함께 ‘데모’에 나섰다가 경찰에 붙들린 적이 있었다. 고압적인 태도를 일관했던 경찰은 취조 과정에서 그가 디자인 전공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스스럼없이 훈방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사회의 인식 속에, 디자이너는 정치와 무관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깊이 박혀있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군부독재정권이 자행했던 ‘문화의 탈정치화 정책’이 우리 사회에 깊은 오해의 뿌리를 내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 스스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어왔다. 1980년대 이후부터 시각문화매체 분야에서도 이른바 투쟁하는 민중, 자유로운 시민, 저항하는 대중이 나타났다. 사회적 주체로서 미술작가와 영화감독, 포토그래퍼, 그리고 디자이너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세상에 발언하는 시각문화 생산자’들의 도래, 김영철도 대열에 같이 섰다.


1997년, 김영철은 장문정, 손승현과 함께 ‘그래픽 상상의 행동주의’를 슬로건으로 AGI Society를 결성한다. ‘그래픽적 상상력’과 그 상상력에 바탕을 둔 ‘문화행동’으로, 우리 사회의 현실을 표상하고 돌파해보자는 의지였다. 이들의 시선은 국가나 자본으로 소외된 사람들, 노동자와 실업자 문제 등에 가 닿았고, 현실에서 고립된 주체들의 연대와 소통을 그래픽으로 증폭시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IMF 금융환란으로 거리에 내몰린 실업자들의 목소리를 일러스트와 손 글씨로 작품화한 <실업자 김씨>를 비롯해 이주노동자, 비전향 장기수, 학력차별 반대, 탄핵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호주제 폐지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모더니즘 정수의 미학’으로 해석했다. 미술평론가 심광현은 “AGI의 시각적인 문화행동은 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일부 흐름 안에서 태동되었으나 ‘정치적 리얼리즘 대 비정치적 모더니즘’이란 방식으로 어긋났던 당시의 쟁점 구도로 본격화되지 못했던 정치적 모더니즘이 디자인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발화된 최초의 사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10여 년간 이어진 AGI Society는 더욱 적극적인 사회적 시각문화 활동을 위해 AGI 스튜디오를 세우고 사회적 발언을 넘어서 그 대안을 도모하는 작업에 골몰한다. ‘문화행동의 인문주의’를 주제로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시도된 문화 교육, 또는 대안 교육 차원의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살아있는 세계교과서’, ‘한국 생활사박물관’, ‘디자이너 교과서를 읽다’ 등 서적을 출간하며 더욱 깊숙한 사회 참여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2008/08/14 09:49 2008/08/1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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