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01/22 1-1 In Transit: 경계 없는 교실을 꿈꾸며
- 2009/01/22 1-2 무수한 다름과 낯선 방식,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작업/학습하기
- 2009/01/22 1-3 상상과 실현의 콤파스를 넓혀라
- 2009/01/22 1-4 주니어'되기' (1)
- 2009/01/22 1-5 마음의 율동을 찾아서
- 2009/01/22 1-6 읽고, 쓰고, 실천하는 학습
1) In Transit: 경계 없는 교실을 꿈꾸며
2008년 가을학기의 열린작업장은 “Transit”을 핵심어로 내세우며 시작했다. 통로, 변화, 과정 등의 의미를 가진 Transit이라는 개념을 내걸고 애초에 우리가 지향하려 했던 교차되고 해체된 ‘열린’ 작업장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의도적으로 ‘팀’을 언급하지 않고, 개개인의 기능적 역할들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고착화된 ‘장르’ 너머를 상상하는 혼성적이고 통합적인 작업을 의식적으로 강조했다. 이러한 시도는 팀 안에서, 혹은 각 작업장 안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죽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소위 ‘전공’이라 할만한 것들 사이에서 선택의 압박을 느끼고 있던 죽돌들을 흩뜨려진 선택지 앞에서 당혹하게 했다.
사실 10대의 학습 내에서 장르를 해체하거나 각 장르간의 교차와 확장을 꾀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작은 영역에 대한 최소한의 몰입과 경험이 일천한 상태에서 영역의 유연함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ransit’의 경험에 도전하는 것을 우리의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이유는, 적어도 죽돌들 스스로가 장르적 한계와 협소한 경험주의에 빠져 시야를 좁히는 것을 경계할 수 있게 되길 바랬기 때문이다. 더구나 죽돌들에게 ‘특정한 작업장’에서의 ‘안전한 경험’은 그 이상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기엔 너무나 안락한 것 처럼 보였다. 판돌들은 종종 죽돌들의 평화를 산산이 깨버리는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나는 그것 ‘또한’ ‘판을 잘 돌리는’ ‘판돌’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변화무쌍한 도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종종 죽돌들과 함께 의도적으로 어려운 길을 가거나 안위를 경계하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실은 실패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끔 숨기기도 하지만 그것을 돌파해 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기꺼이 머리를 맞대기도 한다.
Transit은 이 모든 ‘진행과정’과 ‘경계넘기’에 대한 것이다. 가을학기는 시작과 결과의 소란함에 가려지곤 하는 과정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이야기 해 보기 위한 학기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 학기의 열린작업장 프로젝트들은 개개인이 생각하고 있는 작은 세계 밖의 더 다양한 세계를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인문학 프로젝트였던 <음악으로 세상을 듣는다>는 음악을 통해 세계의 역사와 정치, 경제적 지형 등등을 넘나들며 음악 그 자체 보다는 음악이 담아낼 수 있는 넓고 무한한 영역과 그 유연함을 전하고자 했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즐거움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목표이기도 한 음악이 실로 엄청난 인류와 세계의 경험을 전달하는 무한이 열려진 매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눈 뜰 수 있기를 바랬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학기 중요한 프로젝트로 배치한 것은 <글로비시로 말하자> 였다. 영어가 주는 심리적인 위축감과 거리감을 해결하면서 낯설고 넓은 세계와 그 세계속의 시민들을 만나고 소통하기 위한 모두를 위한 영어, 평등하고 유연한 영어인 글로비시(Global English)에 주목했다. 마침 가을학기의 시작과 함께 하자에서는 정기적인 국제 유스 서밋을 준비하는 <프리서밋>이 열렸고, 하자를 찾아온 외국손님들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던 죽돌들이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게 된 초유의 사태를 낳기도 했다. 서밋에 참가했던 홍콩과 모스코바의 십대들은 하자의 십대들과 함께 서밋의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워크숍과 투어프로그램, 포럼, 마켓과 축제를 뛰어다니며 그 어느 때보다도 “창의성”에 대한 다양한 결들을 체험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가을학기의 초반부가 서밋으로 들썩거린 이후 죽돌들은 다소 소강상태를 보였다. 이번 가을학기는 유독 학기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학습에 대한 불확실함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자신의 게으름과 무책임함을 거의 돌파할 생각이 없는 죽돌들이 휴학과 학적정리를 거듭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여파는 가을학기를 기세 좋게 시작하려던 죽돌들, 특히 주니어 코어그룹이라 할만한 3-4학기의 죽돌들이 꽤 긴 시간을 ‘죄책감’에 시달리도록 만들기도 했다. 학습에 대한 개인들의 ‘동기상의 위기’를 지나치게 관계 중심적으로만 해석하던 죽돌들이 이 문제를 팀워크와 멤버십에 관한 것으로 받아들인 때문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시 한번 학습자 개개인의 동기유발의 문제에 맞닥뜨렸고, ‘팀, 혹은 작업장’을 게토화 하는 것에 대해 재고해 보아야 했다.
이러한 가운데 개인의 학습수준이나 욕구, 매체와 팀의 경계를 넘나드는 동시에 하자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생생한 도전과 실천을 시도했다. 본격적으로 transit을 시도한 <컨테이너 어페어>와 <Save my City>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장소” 에 대한 경험과 욕구를 ‘이미지 읽기’에서 ‘현장참여’로 발전시키고, ‘발견되고 학습된 언어’에서 ‘자신의 언어’로 서서히 개진해 갈 수 있는 현명하고 분석적인 눈과 언어 가지기를 훈련했다. 각자의 삶이 지속되고 있는 장소들에 대한 인문학적인 성찰과 해석 등으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인문학자들의 강좌, 죽돌들의 토론, 작업자들과의 워크숍 참여 등을 분주하게 따라다니는 한편, 읽고 쓰고, 사진 찍고, 그리고, 소리를 채집하고, 영상을 담아내면서 기능적 접근으로서의 매체작업이 아닌, 일종의 스토리텔링으로서의 매체 언어 만들기를 시도하였다.
위와 같은 프로젝트들을 통해 이번 학기에 만들어진 결과물은 “서울 청소년 교육미디어 축제”와 ”변신변종: 시각예술의 다중전략” 이라는 전시회를 통해 두 차례 선보였다. 학습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를 물리적인 교실 ’밖’으로 삼은 것 또한 경험과 사고의 확장을 노린 것이었다. 작업장 안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내부적으로만 조용히 공유하고 서로간의 격려와 만족 속에서 학기를 마무리 하곤 했던 관례는 그다지 신나고 두근대는 경험은 아니지 않았나 한다. 자신이 몸으로 경험한 세계가 진짜 세계속에서 펼쳐질 때, 그리고 그것을 매개체로 타인과 만나고 내가 말하는 소리에 누군가 응답할 때, 때론 모진 평가를 받기도 하면서 자신이 한 일을 촘촘히 회고하고 성찰하게 될 때, 비로서 사고를 확장하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열린작업장의 프로젝트들은 늘 교수자와 학습자, 학습의 공간, 작업의 장르, 소속된 팀, 생각의 영역 등 모든 경계의 유연함을 전제하며, 사고의 유연함과 그 확장을 기대한다. ‘작업장’을 베이스로 학습한다는 것은 그 어떤 학습이 일어나는 교실에서보다 모두의 열린 마음과 사고를 필요로 한다. “관심 없는 일을 왜 해야 할까?”, “ 이 일이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 걸까?”, “혹, 이 일이 나의 평온함을 망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식의 의심과 방어들은 너무나 소모적이어서 그 누구에게도 어떤 성취도 안겨주지 못한다. 머릿속을 상쾌하게, 어깨를 보다 가뿐하게, 두 발을 힘차게 내딛어 “경계위에, 혹은 과정 위에(in transit)” 서자. 경계를 뛰어넘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 설레이는 일이다. Transit 위에서 우리는 모두 미래에 대한 설레임을 안은 학습의 여행자이다.
(세이랜/ 열린작업장 판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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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수한 다름과 낯선 방식,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작업/학습하기
’2008년 가을학기 열린작업장의 핵심 키워드는 transit 입니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주니어들에게 나눠준 파일의 맨 처음 페이지의 첫 문장이다. 주니어들은 그 문장을 읽고 그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저마다 어떤 생각과 의문을 갖게 되었을까? 아마도 대부분은 그 의미나 의도에 대해, 또 그것이 얼마나 유동적이며 확장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선명히 인지하진 못했을 것이다.
가을학기는 transit 이란 단어가 갖는 넓은 의미와 확장가능성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학기가 시작되기 전 진행된 <방학 프로젝트:jump haja>부터 그 시도와 진행은 시작되었다. 주니어들이 느끼기에 너무 많은 것들이 혼재되어 융합되는 것 같았던, 그래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던 것 같던 예비학교. 상당히 많은 장치와 방법들이 어우려졌던 무한도전의 무성영화999는 이번 학기 열린작업장의 성격이 어떠할 것인지를 단편적으로 경험 할 수 있게 했던 시간이었다. 또한 열린작업장의 2008년 가을학기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쉬우며 고정된 자리를 잡고 온전히 서있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것도 느끼게 해주었다.
Jump haja는 유난히 인원이 많던 이번 학기의 특성과 transit 이란 키워드를 고려하여 어떻게 하면 통합매체작업의 경험을 활동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단순히 하나의 장르를 넘어서고 또 다른 장르와 교접하며 여러가지 방식과 수단들을 종합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갖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각각의 장르나, 방식, 그 수단들이 적절하고 유용하게 쓰여지기를 기대했다. 그리하여 하나의 공간 안에 여러 공간이 존재하고, 하나의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이 겹쳐져 흘러가며 복합된 시/공간 속에 다양한 요소들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하였다. 시대의 흐름을 앞서거나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의 새로운 시도는 아니었을 테지만 또 하나의 충분한 시도이자 가능성을 보여 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주니어들은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있어 자신이 하나의 가변적인 매체로서 기능하고 소통하며 융합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Transit 이란 화두를 전면에 던져놓은 것은 이처럼 각 각의 작업장들과 개개인 죽돌들이 탈장르하고 혼성, 변형하며 새로이 구조되지만 머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기에 한 학기의 화두로서 혼란을 야기시킬 수도 있었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주니어과정을 일컷는 ‘열린작업장’ 이란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지금까지의 계획들이나 의도, 진행들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개념도 아니다. 이미 우리는 열린작업장 이라는 영역 안에서 다양한 매체와 장르가 경계를 낮추거나 해체되고, 그런 무수한 단편들이 서로 혼합되고 변형되며 새롭게 짜여져가는 과정을 경험해오고 있어왔다. 다만, 그러한 일련의 과정과 결과들이 좀더 활발하게 살아있는 에너지를 갖고 내/외부를 넘나들며 소통하고 확장되길 바라는 촉매로서 ‘transit’을 이야기 했던 것이다.
탈장르/혼합매체작업에 있어서 촉매라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을 인식하고 못하고. 사용하고 하지 않고에 따라서 그 내용과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여기서 말하는 촉매라는 것이 일정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학기 열린작업장에서 준비/기획한 모든 일정과 프로그램들은 전부 하나의 단편적인 촉매로서 기능했던 것 처럼 말이다. 더 넓은 범위에서 찾자면 일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과정들 역시 개인과 공동체 그룹의 진행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촉매로서 작용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을학기 열린작업장의 전체 스케쥴의 목/금요일에 배치되어 있던 sudio/studio+/ outdoor studio 는 무엇인가에 특별히 집중해볼 수 있도록 한 촉매로서 집중된 시간이었다. Studio/studio+ 시간은 각각의 작업장 별로 그 영역의 개념과 방식에 집중하며 밀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였다. 집중된 단련의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을 이 시간을 통해 개인 혹은 팀으로서 타영역과 교차하고 통합되는 순간에 필요한,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베이스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미술/디자인 팀인 202studio에서는 material information 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시각언어에 대한 고민과 탐구를 진행했다. ‘재료의 여행:travel of material’ 에서는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물성을 같는 재료들에 대한 분석과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활용법과 사용방식을 실행해 보았고, mind compose 와 0 my mind를 통해서는 시각언어의 해석/변형/구성을 통해 시각이미지의 이야기전달 가능성을 경험해보았다. 이처럼 Material information을 통해 시각이미지를 익숙하게 하고 다양한 관점을 통해 적절한 방식으로 그것이 사용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한 감을 익히는 것이 가장 주요한 의미였다. 그리고 이런 과정과 방식들을 자연스럽고 유용하게 하기 위한 기본적인 tool 사용법에 대한 학습 또한 병행이 되었다.
영상팀인 캐치스코프 역시 영상이미지라는 시각언어에 집중해보는 시간으로 sudio/ studio+ 시간을 활용하였다. 창의 서밋 기간에 촬영했던 방대한 내용들을 분류하고 편집하며 단순한 기록영상과는 다른 여러 시각과 이야기와 해석이 담긴 영상물을 만들어 내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학기들에게는 하나의 통과과정이자 중요한 작업의 지점으로서 주말영상학교가 진행되었다. 주말영상학교에서는 기본적인 촬영법과 편집방법들, 그리고 영상이론들을 학습하며 최종적으로는 스스로 제작한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소중한 경험을 만들었다. 얼핏보기엔 단순한 일정같지만 그 안에서 들인 시간과 노력, 고민들은 tool 사용법부터 영상미학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진행과 경험을 제공하며 영상작업자로서의 밀도를 높이도록 해주었다.
글로벌학교는 이미지보행 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그들이 속한 도시, 사회, 문화의 현상과 흐름들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발견/공유 하며 팀원 간의 관심사와 팀으로서의 방향에 대한 범위를 좁혀나갔다. 특히 공연팀을 제외한 모든 죽돌들이 참여했던 컨테이너 어페어의 내용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와 관련되고 파생된 흐름들에 집중을 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안에서 버마 출신 이주노동자인 ‘부다’씨와 함께하며 한국사회 안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논쟁들을 공유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공연팀인 촌닭들과 sol-ration은 무엇보다도 더 나은 공연을 위한 연습에 집중하였다. 보다 발전되고 향상되는 공연팀과 공연자가 되기 위해 악기연습, 발성, 랩연습, 팀원간의 호흡 맞추기 등을 통해 무대 위에서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리고 단순히 무대 위에서의 능숙한 실력만을 채우는 것에 몰두하지 않고 연출카페(촌닭들), 아카데믹 뮤직, 출판작업(sol-ration)등을 통해 좀 더 확장된 인문학적 시각과 귀를 채우기도 했다.
공연팀을 제외한 202studio, 107studuo, 글로벌 팀은 매주 목/금 2시~4시에 하자 앞마당에 세워진 컨테이너에서 컨테이너 어페어를 studio+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다. 컨테이너 어페어는 이번 학기 키워드인 transit을 상징하는, 실제하는 transit한 공간이며 동시에 그 안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을 통해 주니어들이 transit 하는 경험과 가능성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업장과 외부와의 경계에서 하나의 촉매이자 거점, 통로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10월부터 12월 까지 14주에 걸쳐 현재 죽돌들이 타진 해 볼 토픽들을 중심으로 강좌, 토론, 실천의 맥락을 따라 ‘도시를 사유하는 이미지 읽기(정현)’라는타이틀로직선적이지않은미학강의를, ‘도큐멘트,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김동원)’는기록영화와의생생한경험과의만남을. ‘신자유주의와도시건축: 몇가지 가능성(유니 박)’은도시건축이어떻게신자유주의와결탁해서도시의풍경을균질화시키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과 대안은 어떻게 이루어 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장소의인문학: 너의 집은 어디인가(김현경)’를통해서는장소가어떻게신체의자유에개입하는지를설명하며환경과사회의틈새에서발생하는질문과의견을함께토론하였다.
이후 아웃도어 스튜디오로써 현장 참여까지 연결되었던 ‘미학과 실천사이: 이주와 연대의 정치(믹스라이스-조지은)’에서는한국사회안의이주노동자들을통해자본과사회, 인종과 국경의 경계를 불안정하게 이동/정착 하는 이주민들의 삶을 고민하게 하였다. 그러한 발견과 고민이 단지 간접적이고 간헐적인 정치/사회적 관점에서 시작되고 마감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실재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사이 발생되었을 문제들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이번 가을 학기 열린작업장은 프로젝트의 경계를 나누고 성격을 구분하며 각 각의 성과를 독단적으로 규정하기엔 부족함이 많을 정도로 끊임없이 계속 연계/확장 되었다. 이런 가을학기 작업장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 주니어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감을 잡게 된 것은 11월에 있었던 교육미디어축제에 save my city 란 이름으로 작업하고 참여하면서가 아닐까 한다. 죽,판돌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또 다른 외부의 시선들에게까지 모두 만족스러운 과정이자 결과였던 save my city는 어는 순간이 되어서 갑자기 튀어나온 좋은 결과는 아니다. 그 동안 sudio/studio+/outdoor studio 를 중심으로 인문학과 언어학습 그리고 일상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진행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잘 축적되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열린작업장에서 항상 중점을 두고 있는 탈장르와 통합적매체학습이란 것은 그럴듯한 계획을 짜내는 판돌과 멋드러진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사들, 눈에 띄는 감각과 재능을 지닌 몇 몇의 죽돌들이 진행한 몇 몇의 기획으로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studio/studio+/outdoor studio 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과 결과들은 발견하고 담아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준비하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키우고, 그것을 움직이고 실행할 수 있을 바탕이 되는 방법들을 채우면서 변화하고 이동해나갔던 경험에 기초한다고 할수 있다. 또, 그것이 단지 어느 개인과 팀이 밀도를 얻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취하며 외부로 바깥으로 이동해가는 것만은 아니다. 이동해 나가고 관통해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외부의 다양한 요인들이 내부로 들어오고 관통해 들어오는 것 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다소 산만함을 줄 수도 있을 많은 강사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경험들은 그들의 목소리가 죽돌들에게로 들어오고 관통해지나며 또 다른 이야기와 반응을 이끌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끊임없는 내외부의 넘나듦을 통해서 고정된 영역이 아닌 유동적인 모양과 영역들의 무한한 충돌과 연결을 통해 가능한 것이 탈장르/통합매체학습일 것이다.
탈장르/통합매체학습이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고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까지 포함하며, 얼마나 능숙한 방법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닌 얼마나 다양한 시선과 의견들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탈장르라고 해서 단지 하나의 다른 장르의 방식을 취하고 무조건 있는대로 끌어다 통합하는 것이 통합매체, 혼성 장르라 생각할 수 있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
또 하나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와 오역은 매체란 의미에 대해서일 것 같다. 매체란 것은 영상팀과 디자인팀의 기술적 부분이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보여지는 것들이 아니다. 매체란 것은 넓은 의미에서 한명한명 개개인도 충분히 매체로서 얼마든지 기능하고 발휘될 수 있다. 매체와 장르라는 것이 규정하고 구분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따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확장된 사고와 경험을 하는데 유리함을 줄 수 있다. 물론, 각 각의 매체와 장르가 가지는 특성을 제대로 올곧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며 필수적인 기본요소 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친 이해와 익숙함은 만남과 소통/ 발견과 재생산에 있어 반응을 느리게 하고 진행을 굳어지게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때, 열린작업장은 한국사회 안의 여느 작업장/학습 구조보다 월등히 나은 조건들과 환경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보다, 자신이 속한 팀과는 다른 시선과 방식, 이갸기를 가지고 있는 여럿의 동료들과 팀들이 있고 언제든 서로 바라봐주고 또 손잡아 줄 수 있는 동료들과 팀들이 있다. 때로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며 날카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는 멘토그룹들도 항상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주니어들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손을 잡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좀 더 열어놓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열어놓지 않고 있거나, 열어 보일 것이 없음에도 무신경하게 무조건 열어놓고 있는 건 아닐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손을 잡고 함께하도록 구조되어있지 않는다고 하면 과연 얼마나 자연스레 서로들 손을 잡고 함께 할 마음이 있을까? 넘쳐나는 느낌이 들 만큼 친절하고 열성적인 조언과 의견들을 얼마나 잘 듣고 또 반응하고 있을까? 혹은, 자신이나 우리팀이 월등히 돋보이기 위해서만 다른 방식과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학기 동안 가만히 멈춰서서 찬찬히 생각해 볼 틈이 없을 만큼 항상 분주한 시간들일 테지만 앞서 열거한 물음들을 되새겨 보는 시간은 꼭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통합매체학습과 작업을 잘 할 수 있는 비법 같은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설령 비법이 있다고해도 열린작업장의 멘토들은 그런 쉬운 비법 따위를 알려줄 마음이 조금도 없다. 그렇기에 종종 몇몇 죽돌들은 판돌들에게 무시를 받는다거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 뒤로 얼마나 반응하며 변화하고 고민을 하는지 되물었으면 한다. 너무 좋은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모두들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의도적으로라도 불편함을 취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자극들에서 또 다른 감각을 취해보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균형을 잡는 것. 통합매체학습과 작업에 있어 가장 크게 요구되고 필요되는 것은 아마도 균형을 잘 잡는 것일 것 같다. 열린작업장의 의도와 기획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가장 기대하는 것 또한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단지 지금 현재의 균형을 잘 잡는 것뿐만이 아닌, 앞으로의 알 수 없는 환경과 문제들에 대해 유연히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하는 것 말이다. 균형을 잘 잡고, 그럴 수 있는 경험을 위해서는 보다 더 많이 흔들리고 부딪히며 변화해 봐야 한다. 어쩜 누군가에게는 생각해 볼 수 없을 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지만, 주변을 잠시만 둘러봐도 나와 함께 흔들흔들 부딪히며 변화해 볼 동료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나는 상황과 문제들에 따라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힌트와 제안을 할 수 있는 동료들이 다양한 기억과 이야기와 방식들을 가지고 서로를 기다리고 있음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의견과 너무 많은 방식이 지나친 열정으로 모아졌을 때 그것을 조화롭게 정리해 줄 멘토들이 있다는 것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함을 알면서도 분주할 것 만 같은 흐름 속에 덩달아 그냥 적당히 흘러 가기만 했던 시간들 안에도 본인을 더 단단히 할 여유로운 기다림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막연한 불안과 조바심으로 발을 동동 구르거나 무력해져 가라앉지 않고 지금보다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실수하고 더 많이 욕심을 내고 더 많이 둘러봐야 한다. 알고 있는 정보와 익숙하고 편리한 방법들 안에서만 상상하고 계획해선 안된다. 무척 어려운 일인 것 같겠지만, 사실 너무 쉽고 단순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음껏 상상하고 계획한 후, 그것을 어떻게 실현시키고 실행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진행하면 자연스레 통합매체적인 학습과 작업을 하고 있는 자신과 동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자연스런 모습으로 실현되고 있는 실재가 없던 상상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단, 상상력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디피/ 열린작업장 판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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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상과 실현의 콤파스를 넓혀라
어릴적 갖고 놀았던 만화경속 세상은 늘 다채롭고 화려했다. 아주 간단한 조작법으로 새로운 패턴들이 만들어지고 예측하지 못한 이미지들이 펼쳐지기 때문에 마치 환영을 보는 듯 했다. 어쩌면 그런 이미지들을 보고 싶어했던 나의 기대를 담은 시선과 의지의 프레임을 걸어두고 만화경속 '세상을 만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 학기 열린작업장 죽돌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의 프레임을 들여다보고, 우리 주변, 그리고 세상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고자 몸을 움직이고 한 발자국씩 밖으로 나가보는 시도들을 이어갔다. 주니어 학습과정으로 '열린작업장'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3학기가 된 이번 가을을 기점으로, 그간 '나'라는 개인의 화두에만 골몰해있거나 '하자 안에만' 안주하려는 태도들을 작업을 통해 직접 실현해보고자 했다.
9월, 가을학기가 시작되자마자 '2008 서울청소년창의서밋'(이하 창의서밋)이 하자에서 열렸다. 2010년을 기점으로 하자가 직업체험센터에서 '창의센터'로 전환하는 준비의 일환으로 '축제적 심포지움'이 열리게 된 것이다. 서울을 비롯하여 전 세계의 창의적 전문가들과 창의적 학습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는 홍콩과 모스코 학교 등 다양한 현장들이 모였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세 개의 심포지움에서는 주로 어른들이 즐겁게 대화하며 토론하는 자리였다면, '일상적 창의워크숍/글로비시 낭송시' 이 두 개의 워크숍은 10대들을 위한 판이었다.
하자, 홍콩, 모스코 이 세 학교가 만나 서로의 학습과정에 대한 쇼케이스들을 선보였고 '창의성 뭥미?;', '글로비시 창시자 네리에르와의 만남', '사회적 기업가, 창의적 프로세스를 만들어가는 덴마크 카오스 필롯츠와의 워크숍' 등 3개의 유스토크가 이어졌다. 영상팀 캐치스코프는 서밋의 공식 기록팀으로, 스픽하자 멤버들은 워크숍/유스토크 등 원할한 소통을 위한 통역팀으로, 그외의 많은 죽돌들이 어느새 몸을 움직이며 하자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창의서밋이 끝난 후 죽돌들의 회고자리에서 '호스트'로서의 세심한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 하자와 비슷한 다른 학교/현장들의 대한 관심들이 생겨나면서 점차 시선을 밖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누군가를 '초대'하는 작업, 만남을 통해 학습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창의서밋으로 하자 안이 여러 나라/현장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뜨겁게 달궈졌다가 열을 식힐 무렵, 열린작업장은 '컨테이너 어페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을 초대했다. 하자 앞 마당에 설치된 2층짜리 컨테이너가 하자 안과 밖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통로 역할을 하면서 점차 나->우리 주변->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 이야기들이 확장되고 이동시켜보는 시간이었다.
'도시를 사유하는 이미지 읽기(정현)','신자유주의 시대의 건축과 몇 가지 가능성(유니박)',
'나의 집은 어디인가(김현경)','도큐멘트,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김동원)','이주와 이동(믹스라이스)'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영화감독, 미술비평가 등을 초대, 늘 우리주변에 존재하고 있지만 발견하지 못했거나 관심의 영역 밖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이것을 계기로 죽돌들에게는 각자의 생각의 '창'이 하나씩 열리기 시작했다.
많은 정보와 지식들을 알게 되었지만, 각자/우리의 것으로 '소화'하고, '표현'해보는 장이 필요했다. 11월 26일-29일에 열린 '서울청소년교육미디어축제'를 통해 열린작업장 죽돌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화두삼아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하자가 위치한 '영등포'를 중심에 두고 서울을 동/서/남/북, 네 팀으로 나누어 하루동안 각 지역을 탐사하는 프로젝트였다. 탐사 과정에서 발생한 스토리, 이미지, 사운드를 채집하여 'Save my city'라는 타이틀의 전시형태로 모아졌다.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면서 도시의 풍광과 사람들의 life style이 획일화되어가는 과정을 포착, 그 속에 살고 있는 개개인의 소통방식들을 담아낸 [황금도시], 영등포/마포/김포/인천 지역을 탐사하면서 예전 '물'이 있던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물을 찾아다니는 물고기의 여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Wave City], 도시 이미지의 양면성을 부각시킨 뮤직비디오 [공갈빵],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뉴타운 지역들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이미지, 오브제들을 채집하는 액티비티를 그린 [신 복덕방]. 각기 다른 네 곳의 탐사과정에서 보여 지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다양성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들으면서 죽돌들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이해와 기대, 가능성들을 탐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통합적인 형태의 작업물로 풀어내었다.
전시 오픈까지 빡빡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죽들들이 스스로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 과정속에서 자연스럽게 팀/장르간의 경계를 허물고 공동의 화두를 가지고 스토리텔링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시기간 내내 열린작업장의 모든 죽돌들이 직접 도슨트가 되어 일반 관람객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Save my City' 전시가 끝난 일 주일 후, 국민대 제로원 디자인 센터에서 또 한 번의 전시회에 참가하였다. 'Beyond Art Festival'에서 기획한 [변신변종]이라는 전시에 초대되어 올해 1년 간 열린작업장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통한 학습과 작업의 시도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연이어 두 차례 걸친 전시회를 계기로, 죽돌들이 '작가'로서 어깨가 으쓱해지는 경험을 했다기 보다 하자->컨테이너->외부 전시 공간 / 나->우리(주변)->도시(세상)로 관심과 화두, 표현의 영역들이 확장되고 생각과 이야기들을 스스로 이동시켜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난 시간동안 각자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들려주기 위해 마음의 문을 그리고/열고 한 발자국 나왔다면, 이번학기에 시도된 outdoor studio를 통해 죽돌들은 10대 작업자로서 보고, 듣고,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또 다른 문을 열기 시작했다. 고정되어 있는 생각들을 움직이기 위해 조금씩 콤파스의 원을 넓혀보자, 상상에서 실현으로 말이다.
(유리/ 열린작업장 판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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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니어 '되기'
2009년 가을학기 프리스쿨인 무한도전이 시작되던 첫 날, 하자 열린 작업장 담임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몇몇 그룹과 왠지 모르게 낯설어 하는 모습으로 앉아 있던 몇 몇 개인들. 아직 구성원의 특성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첫 날이었기에, 그들이 이제 막 길찾기 과정을 마친 아이들과 주니어과정 1, 2, 3학기를 마친 아이들, 그리고 하자 열린 작업장에 지원한 아이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었음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열린 작업장의 담임 판돌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던 그 때, 유독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학습할지에 대해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아이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동병상련의 감정이었던 것 같다.
열린 작업장, 감부터 잡고 보자
프리스쿨이 끝나고 담임들과의 학습 계획에 대한 면담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죽돌들이 참여해야 하는 필수과목인 인문학, 글로비시 수업과 자신의 관심에 따라 선택한 각 작업장 별 프로젝트, 그리고 선택에 따라 참여할 수 있는 제 2외국어, 담임 프로젝트 등 마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처럼 작업장이라는 주 전공을 선택하고, 전공필수와 교양 등의 선택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하자 열린 작업장 학습 과정은 이 과정에 막 발을 들인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름 그 자체였을 것이다. 특히나 같은 교실에 앉아 과목마다 바뀌어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을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수업을 열심히 듣기만 하면 되던 공교육과정에서 하자로 터닝한 주니어 1학기들에게는 자유라는 기쁨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란이라는 감정의 교차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 보였다.
이러한 막연한 느낌으로 학기는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9월 22일~27일까지 진행된 창의서밋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아이들의 표정은 지루함 그 자체였다. 일부러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참여 신청을 한 외부 학생들이 있음에도, 하자 안에서 벌어지는 큰 판은 아직까지 한 학기의 학습 계획도 세우지 못한 대 다수의 죽돌들에게는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아직 열린 작업장에서 그리고 하자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학습할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행사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일사분란하게 제 자리를 찾았고 경험했으며 즐기고 있었다. 자신의 학습 계획을 그리지 못한 것에 대한 우려는 나만의 노파심이었던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장시간의 심포지움에서도 눈을 떼지 않고 경청하는 몇몇 1학기 죽돌들의 모습에서는 큰 가능성마저 볼 수 있었다.
그 반짝이던 눈빛은 어디로 가고...
서밋이 끝나고 서밋 기간 동안의 날쌘돌이들은 마치 길을 잃은 어린양처럼 순간 변신했다. 아직까지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가 주어져야만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학습을 계획하고, 구체적인 경험과 작업을 통해 배우는 진정한 자기주도 학습을 지향하고 있는 하자의 주니어가 되는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이제, 하자에서 진정한 자기주도 학습을 시작한다
자기주도 학습이란 ‘다른 사람의 도움 여부와 무관하게 학습자가 주도권을 가지는 학습과정으로, 학습목표를 설정하고 학습자원을 확인하며, 학습전략을 선택하고 학습결과를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을 학습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하자에서는 이 모든 과정에 있어 죽돌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도구를 사용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있어 그것은 엑스칼리버처럼 그 자체의 쓰임새로 사용되지 못하고, 해결을 위한 하나의 도전 과제로만 인식된다. 이를 위해 작업장의 판돌들은 그들이 도전해야 하는 과제를 과제에만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 방법을 찾고, 그 쓰임새와 유용성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질문을 계속한다. 판돌들의 질문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며, 스스로 답을 찾음으로써 자기주도 학습의 진정한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질문의 과정을 또 다른 일종의 도전이나 침해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더 이상 복잡한 사고를 하고 싶지 않은데 끊임없이 자신을 자극하는 질문들이 버겁기만 한 것이다.
배움과 학습의 과정은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특히 하자의 작업을 통한 학습에서는 일반적으로 학습에서 요구되는 계획과 실행, 평가 외에도 함께 작업하는 동료 작업자들과의 조율도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까지 수동적 학습자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주니어 1학기들은 작업자로서 팀 내에서의 기여나 책임감을 중요시하고 있는 주니어 3학기 이상의 아이들과 한 공간 안에 있지만 섞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하자에서 소통되고 있는 언어들은 자신들이 그 동안 사용해오던 것들과 사뭇 달랐다. 단어의 뜻도 파악되지 않는 말들을 일상어처럼 사용하고 있는 주니어들은 1학기들에게는 동료보다는 견제 또는 경외감의 대상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열린 작업장의 주니어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했던 것일까?
모터 달기, motivator
질문하고 사고하기, 동료 작업자들과의 화음 맞추기 등 작업장의 주니어가 되는 힘든 과정을 거치고, 체화하는 것은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다. 궁색한 변명에서 벗어나고 열심히 하려는 나름의 동기에 의해 단 한 번이라도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 죽돌들에게는 창의서밋이 첫 번째 성취감의 순간이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언어 수업을 통해 성취감을 느꼈고, 누군가는 주말 영상학교에서, 그리고 몇몇은 Save my city 프로젝트를 통해 짜릿함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 시기와 방법은 모두 달랐지만, 단 한번이라도 그 단 맛을 본 후엔, 다들 옆구리에 하나씩 모터를 달아 놓은 듯했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끙끙대다가 마침내 해결되었을 때 얻게 되었을 때의 희열은 경험과 연습의 반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이 무겁지 않은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에너지는 ‘해 보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 학기를 정리하며 돌이켜 보건데, 이번 가을 학기에서 모든 주니어들이 희열의 순간을 경험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기어가든, 걸어가든, 달려가든 목적지가 있어야 갈 수 있다
단 한 번의 성취감이 발동의 자극제가 되었다면, 이 발동을 멈추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구체적인 목적지이다. 작업을 경험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자 죽돌들의 목표는 매우 구체적이기도 하며, 때론 원대하다. 학습을 함에 있어 자신이 해야 할 것과 그 속도 등을 관리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면, 그 계획은 목표를 가짐으로써 좀 더 뚜렷해 질 수 있다.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가 어떤 특별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것을 고민하는 동안 그 내용대로 행동하겠다는 마음이 굳어지고 목적지까지 성공적으로 도착할 확률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이 왜 학습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목표가 뚜렷하면 일단 절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자에 오기 전 만났던 학생들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에서 선생님들의 강의를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공교육의 정해진 커리큘럼의 학습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 성적에 의해서만 능력을 평가받고 있었고, 한 등수라도 더 올리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비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소위 말하는 ‘공부의 神’의 공부 잘하는 비법은 공부를 하는 이유를 알고, 공부의 방법을 알고, 시간을 잘 활용하며,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것이다. 작업을 통한 학습을 하는 하자의 열린 작업장에서도 이 비법은 통용된다. 비록 그 내용과 방법이 다르더라도 열린 작업장의 수많은 과정들은 결국 그 시기의 학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 학기를 마치고 겨울을 나고 다음 학기를 시작할 때, 스스로 각자 특성에 적합한 하자에서의 학습과 작업의 이유, 그리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학습 계획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미오/ 열린작업장 판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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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음의 율동을 찾아서
음악이라는 게 그냥 듣고 즐기면 그만이지, 거기에 무슨 말이 필요해? 음악을 전공할 것도 아닌데 머리 아프게 생각하고 따지면서까지 들어야 하나? 음악을 중심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려고 구상할 때 망설이게 한 질문들이다. 더구나 내가 음악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면서 음악을 가지고 한 학기 동안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도 감행한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내가 음악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는 것이었다.특히 십대와 음악을 함께 듣는다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나의 청소년기는 음악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사춘기의 정서적인 성장에 중요한 나이테를 그어주었던 음악들을 한 세대 아래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면서 느낌을 나누는 것은 색다른 만남이었다. 그를 통해 시대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고, 또한 그 차이를 넘어서 공감할 수 있는 바탕을 확인하기도 했다. 역사를 많이 배우지만 정작 2,30년 전의 세상살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한국에서, 음악을 통해 과거의 발자취를 더듬는 작업은 뜻 깊은 공부다.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초보 아마추어 애호가지만, 문화와 사회를 연구하는 인문학도로서 음악을 둘러싼 역사적인 정황에 대해 호기심이 아주 많다. 이번 인문학 강좌는 그러한 차원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음악대학을 지망하는 학생이 아니면 음악을 진지하게 공부하지 않고, 그나마 주어진 음악 교과목도 그 장르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지금의 교육 현실이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때로 자연 환경 등 인간이 살아가는 조건이 예술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당시의 인간관과 세계관이 음악과 연결되는 지점들도 매우 다각적이다. 음악을 통해 오히려 시대의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면 흥미로운 공부가 될 수 있으리라.
음악이 산업이 된 사회에서 그 생산의 메커니즘을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작곡가와 가수들의 끼가 저절로 우러나와 표현되는 음악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상품 가치를 겨냥한 치밀한 기획과 작위적인 연출이 점점 중요해지는 한국의 대중음악계의 현주소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 그것으로 밥을 먹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음악을 통해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안에 그러한 신명이 어떻게 꿈틀거리고 있는지를 자문하게 되었다
.음악은 신비한 언어다. 음악은 언어 이전의 원초적인 세계, 또는 언어를 넘어선 무한의 우주를 묘사한다. 매우 추상적이면서도 감각으로 직접 와 닿는 울림이 거기에 있다.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아도 음악을 통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고, 그 느낌은 국경을 넘어서 소통된다. 강의실에서 우리는 여러 음악들에 심취해보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빠져나왔다. 음악에 대해, 음악에 대한 우리의 정서적 반응에 대해 말로 표현해보았다. 그를 통해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마음의 드넓은 부피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번 강좌의 수강생들이 지금 유행하는 음악들의 비좁은 영역을 넘어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심미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를 바란다. 강의 시간에 합창해보았던 노래들의 가사에서 시적인 운율을 음미하면서 인생과 우주의 심오한 이면을 잠시 들여다볼 수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앞으로 수강생들이 낯선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될 때 내 취향이 아니라고 귀를 닫는 것이 아니라, 그 새로운 소리의 문법을 헤아리면서 작곡가의 심경에 이입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어쩌다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접하게 될 때 여러 악기들의 미세한 음향과 그 어우러짐에 예민한 감각의 촉수를 곧추 세우고, 지휘자와 단원 사이의 복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으리라.
음악의 생명은 리듬이다. 리듬은 우리의 신체 안에 깃들어 있는 원리이자, 자연을 통해서도 구현되는 운동이다. 음악이 언어보다 더 앞서 생겨났으리라고 추측하는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음악을 역사적인 지평에서 바라보고 생활의 맥락에 유쾌하게 삽입할 수 있다면 우리의 문화는 한결 더 격조 높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 긴장과 이완, 규칙과 자유, 빠름과 느림.... 음악에 내재하는 패러독스들을 삶 속에 끌어들이면서 마음의 율동을 빚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설픈 강의에 귀 기울여준 수강생들, 어려운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보배로운 이야기와 음악들을 선물로 담뿍 안겨주신 초빙 강사들, 번거로운 수업의 준비와 후속 작업들에 기꺼이 동참해준 판돌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우리의 가냘픈 목소리와 몸짓들이 아리따운 음표가 되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향해 피어오르기를.
(김찬호 / 하자인문학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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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읽고 쓰고 실천하는 학습
내가 다니던 시골 어드매의 한 중학교에서 강조하던 과목은 무엇보다 [철학]이었다. 학교 철학을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위인의 일생을 배우는 것부터, 학교의 실제 철학을 배우거나 졸업 즈음에는 각자의 화두 되는 단어를 지정하여 교장과 그 것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곤 했다.
[철학]이라는 모호한 과목은 3년 내내 1주일에 한 번씩 시간표를 차지했고, 철학이라는 좀 무거운 이름 앞에 굴복하는 날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 곳에서 3년 동안 철학을 배웠다.
(사담이지만)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졸업반이 돼서야 학기의 타이틀을 정하고, 그 단어를 갖고 한 학기 수업을 했을 때이다. 학교를 다니고 있으나 전혀 다니고 있지 않은 것 같았고, 매일 자꾸 도망가고 싶었다. 혼자 여행 계획을 짜고, 철학수업의 주제를 <여행>으로 정한 후 철학 수업을 핑계 삼아 내빼려는 마음이었다. 사실 서울로 갈까 싶었다. 솔직히 매번 그랬는데 그때가 제일 그랬다.
하지만 '철학 씨'는 내 계획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교장선생님과 수업을 하는데 자꾸 내 말이 막혔다. 좀 더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내가 나 스스로에게 묻기 너무 쪽팔리고 검구린 현실을 보게 했다. 절대 안 보려 했는데 철학 씨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미래로의 여행이 아닌 현실을 직면한, 당연하고 당연한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갔다.
자포자기 후 내 주관에 맞게 아주 잘 풀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는 다시금 그때의 '철학 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때의 나에게 철학이란 무엇이었을까? 늘 '그 때의 나에게 어떻게'라는 질문은 자기 편한 곳으로 결론지으면 그만이겠지만,
10대 초반의 나는 '읽는' 사람이었다. 10대 중반 즈음에는 '읽고, 쓰는' 사람이었다. 10대의 아주 마지막이 된 지금은 '읽고, 쓰고, 실천하는' 일까. 하자센터는 내가 도서관에서 조용히 읽고, 쓰기만 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고 실천할 것을 권면했다. 그렇게 첫 번째로 실천한 것이 '길찾기' 이였다. 얼마 전에 길찾기 때 쓰던 인문학 파일을 찾아보았다. 그 때 조한이 했던 인문학의 주제는 <발견과 발상>이었다. 그 때는 인문학 수업과 인문학 분반이 나뉘었는데, 인문학 수업 때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섯 개의 시선>을 보며 -언니가 이해하셔야 해요-의 은혜를 초대하여 만났고, 술에 대한 공부와 실제 배상면 주가의 성년식에 참가하고, 간디학교의 양희규 선생님/ 송재희 선생님의 특강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첫 공부가 시작 되었다.
그냥 그 때까지 인문학을 또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철학 씨'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고, 읽고 쓰는 것이 낯설지 않았던 터라 별 질문이 생기지 않았다. 그 당시 길찾기 친구들의 출·결석, 참여도들이 들쭉날쭉 했기에 여전히 '혼자 공부하는 느낌'은 떠나지 않았고, 그 것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 후 주니어 1학기에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팀원들과 참으로 질기고 질긴 공부를 하였고, 2학기에 촌닭들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하자 인문학을 만나게 된다.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가르치시는 김찬호 선생님과 1년 반 동안 공간, 중국, 음악에 대해서 배웠다. 글쓰기 프로젝트를 할 때부터 조금씩 혼자 하는 공부보다 함께 하는 공부에 대해 감을 잡게 되었다. 함께 하는 공부는 혼자 하는 공부보다 시간 많이 들고, 말 많이 해야 하고, 싸움도 나고 화도 나고 참 많이 웃었다. 한강이 뭐기에 한겨울에 하자에서 용산 동호대교까지 걸어가며 영상 만들고 인터넷 뒤지던 기억, 중국 올림픽 가상 개막식과 스포츠 신문 같은 기사들을 PPT, 퍼포먼스로 어렵사리 만들던 기억, 브라질 카니발 PPT 만들기, 셀 수 없이 많았던 인문학 후기 모임, 상상리뷰로 함께 봤던 구스타보 두다멜 +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글자 한 땀 한 땀에 많은 기억들과 그 때 알게 되었던 사실과 정보들이 서려있다.
1년 반 이상 동안 '함께 공부를 한다는 것'을 경험한 나는 하자의 10대 청소년이 인문학을 함께 하는 것, 에 대한 질문에 봉착했다. 매주의 하루, 오전 999에서의 인문학 교실은 여태껏 쭉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찾기 마무리 시절, 인문학+글쓰기 전공의 시니어 졸업생 페이퍼 졸업식 준비모임에 어쩌다 한 번 들어간 적이 있었다. 페이퍼의 콜로키움 주제는 <인문학을 말하다> 이었는데, 하자에서 제법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죽돌로 구성된 학술모임의 분위기를 풍겼다. 그 모임이 너무 어려웠던 나는 그 때까지 '인문학은 역시 어려운 것' 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나에게 '인문학은 어렵지 않다'를 알게 한 사건이라면 사건이 있었다. 촌닭들 활동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아침이 오면 학교 가기가 싫어서 용산 KTX역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지하철에서 울면서 등교하던 때다. 그 때 나름대로 힘들었던 이유가 있었지만, 내 속에서 나를 어렵고 힘들게 하기도 했다. 소위 슬럼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문학 시간에 필기를 하다 마음을 놓던 때가 있었다. 슬럼프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간단했다.
촌닭들을 장문의 텍스트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삶을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로 보기.
이루거나 잡아내고 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기. 그렇게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 때부터 나는 우리 팀을 '읽기' 시작했다. 읽고 받아 적고, 실천하려 노력했다. 그 때부터 조금 알겠더라.
이제야 나는 열린작업장의 죽돌들에게 조금은 건방진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 자신은, 우리는 어떤 텍스트 앞에 마주서있나. 그 텍스트 앞에서 피할 수 없고, 문장을 이어 쓰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면 당신은 어떤 문장을 쓰고 있나?
설득하는 쓰임새를 가진 공부,를 목적으로 했던 지난날의 대답이며 앞으로의 날들 앞에 놓인 질문이다. 어려운 단어를 뱉어놓고 설명하거나 하다못해 수습이라도 하지 않는 것은, 워드에 아무 글자나 한자변환을 해놓고 후에는 자기도 그 뜻을 읽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지금 나/우리가 하고 있는 말은. 쓰고 있는 글은, 읽고 있는 삶은, 취하는 실천과 태도는 어떤 것을 향해 있는지.
세 번의 인문학교실을 거치며, 하자에서의 인문학하기를 감히 묻는다.
학기 말이 다가오면서 우리 모두는 각종 회고노트와 에세이, 그리고 써야할 등등등 에서 자판과 씨름중이다. 거의 '글잔치'에 준하는 일들을 숨 막히게 쏟아내고 있다. 학습하고 경험하고 실천한 것을 오로지 '보이기 위한 문장'만 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이라는, 학교라는. 일상이라는, 나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우리는 어떻게 읽고 쓰고 실천하고 있을까. 한 해와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지금에 숨을 고르며 천천히 이야기 하고 싶다.
(왕양 / 촌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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